하나열 바이블 스토리 신앙의 실체화

우리의 문제는 신앙과 현실에 대한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신앙과 현실이 일체화 되지 못하고 구분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경대로 살면 이 세상을 절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떻게 양보하고, 손해보고, 억울함을 당하고, 예수님처럼 누명을 쓰고 죽을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결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앙이 좋은 것처럼 행동하고,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세상이 사는 방식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과 현실이 일체가 되지 못하고 부조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잘못된 신앙목표 설정, 미성숙된 신앙, 그리고 성도의 실존 인식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다. 또한 신앙의 목표가 바르게 설정되고, 성숙된 신앙인이 되고, 성도의 실존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부인이 내면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신앙의 실체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1. 신앙과 현실의 부조화


1) 잘못된 신앙 목표 설정과 미성숙된 신앙


신앙과 현실이 일체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앙의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가 이 땅에서의 긍정적인 삶의 변화를 보상으로 바라고 있다면 양보하고, 손해보고, 억울함을 당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삶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을 끄집어내려야 하고,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앞서가야 하고, 내 것을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어야만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인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삶의 만족을 누렸다는 사람은 없다. 세계 최고의 갑부였던 록펠러의 한 마디는 조금만 더’(just a little more)였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이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을 목표로 하지 않고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성경이 가리키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설정할 때 신앙과 현실의 삶이 일체화가 되는 길이 시작된다.


더불어 아직 미성숙된 신앙도 신앙의 실체화를 방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비록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삼았을지라도 신앙이 여전히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신앙과 현실의 일체화는 요원하다. 신앙의 초보를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길밖에는 없다. 여기에 예배와 말씀과 기도가 동원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성도의 실존을 인식하고 신앙과 삶의 목표인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나아갈 때 신앙과 현실의 일체화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성도의 실존에 대한 인식 부족


신앙의 목표를 향하여 성숙된 신앙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성도의 실존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의 보상을 받기를 바라는 이면에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 구원의 완성으로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백성이라는 면류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책은 많은 경우에 하나로 귀결 된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과 현실문제 해결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에 대한 확신이 현실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활의 산 소망을 부여받은 자들이다(벧전 1:3). 여기서 산 소망이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확정된 미래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이 역사 속에서는 우리의 육신의 죽음 이후에 실질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실존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의 문제는 대부분이 우리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한 사회의 구성으로 살아가게 되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내 주위의 그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내가 환난을 겪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내 욕심 때문에 발생한다. 그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근거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재벌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거기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의 향락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갑질을 한다면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실존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면 이 세상의 가치를 차지하기 위해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과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도의 실존 인식 부족이 신앙의 실체화를 방해하는 것이다.


2. 자기 부인(否認)


올바른 신앙적 목표와 성숙된 신앙인으로 열심, 성도의 실존에 대한 인식이 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신앙의 실체화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신앙의 실체화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실체화가 실제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자기부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하는 것이 자아만족적 삶을 추구하는 내 안의 나. 내 안의 나를 거스르는 자기부인의 삶을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필수적이다.


1) 말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두운 밤길에 자신의 발 앞을 밝히는 등불이고, 그 밤길의 목적지를 밝히는 빛이라고 노래한다(119:105).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적 성경 읽기와 하나님 중심적 성경 이해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었다. 그 결과 하나님보다는 우리 속에 잘못 각인된 신앙의 영웅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심어 놓으셨다는 뜻이다. 이는 신앙의 인물들을 영웅화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위인열전으로 만들고 그 위인들의 삶을 모본으로 삼아 우리도 신앙의 영웅이 되자라는 것이 바로 인본주의다. 이 인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으며’,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차원으로 읽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어떠한 심정으로 노아 홍수와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셨는지, 시내 산 언약을 지키지 못해 죽어 마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새 언약을 주셨는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셨는지가 이해가 된다. 이 이해가 없이는 십자가의 은혜가 가슴깊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로 다가올 수 없으며, 자기부인의 삶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저 입으로만 중얼거리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에 불과할 뿐이다.


2) 기도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신앙의 대가로 내가 요구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다. 그래서 흔히 아침금식이 떨어졌다든지, 방언으로 하루 3시간씩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든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의 최우선적인 기능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기도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자는 기도 자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기도를 할 수 있는 자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받은 자에게 특권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 특권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과거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어제 나는 하나님 앞에 있었는가?’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가?’ ‘내일 나는 하나님 앞에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관계가 회복된 자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과거에 나는 무엇을 원했던가?’를 되돌아보고,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앞으로는 나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기도다. 과거에 무엇을 원했던지는 상관없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는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날 동안 구해야 할 것도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이 심어지고 은혜가 더해지며, 자기부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