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열 바이블 스토리 메시지

오늘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가히 절망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하나 비비고 기댈 언덕이 없는 것입니다. 일등만이 살아남는 세상, 남을 끄집어 내리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고지에 올라가야만 인정받는 세상, 돈 많은 부모가 없거나 스펙이 부족한 루저들은 그냥 저냥 주어진 현실과 처지를 비관하고 한탄과 원망 가운데서 살 수밖에 없는,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소망을 주어야 할 교회는 가히 절망적입니다. 목회자들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지 못하고 사회법정에 앞 다투어 서고 있으며,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들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양 저마다 자기 자랑과 자기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는커녕 하나님의 이름은 길거리의 휴지조각처럼 짓밟히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차량의 액세서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목사의 한 사람으로써, 또한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로써 부끄럽고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보고 배우라고 할 것인가?’,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어떤 소망을 줄 것인가?’라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해하는 성경 이야기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의 한국교회처럼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웬만한 교회에서는 모두 성경통독이나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관점은 주로 성경의 인물들이 무엇을 했으며,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성경의 인물들을 신앙의 영웅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행위를 신앙의 모본으로 삼아 하나님의 강복(降福)을 얻는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인본주의적 신앙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으로 보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님 자신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24:44)이라고 하심으로써 더욱 지지를 받습니다. 저 역시 구속사적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구속사적 해석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기록한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순행되도록 섬기는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금령을 어김으로써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 이로써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의 친밀한 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순종에 대한 요구에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그 이후로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순종에 대한 요구와 인간의 불순종으로 전개됩니다. 물론 아벨-셋으로 이어지는 계통의 인물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불순종의 대표적인 인물인 가인의 삶을 따랐습니다. 결국 구약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순종 요구에 대해 인간의 불순종으로 시작해서 불순종으로 끝납니다.

, 구약은 인간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따라서 구약을 해석할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요구하셨으며, 인간은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모든 설교는 십자가로 결론을 맺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부족합니다. 모든 설교는 하나님으로 결론을 맺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 중심적 해석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구약성경 원어(原語)인 히브리어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히브리어 동사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4)에서 보다라는 동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2:15)에서 경작하다지키다라는 동사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원어의 동사적 특성과 용례를 통해서 하나하나 확인을 해야 그 의미가 바르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구약성경 본문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주해해 나갈 것입니다.


부디 이곳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신학생, 그리고 일반성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삶에 적용시킴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 섬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