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TV가 나온 이래로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관심을 집중해왔다. 즉,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생겼느냐, 또는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시각적 관점은 실상 오늘의 현상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인류 최초의 삶의 터전인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류의 어머니였던 하와가 동산 중앙에 있는 그 나무를 본즉 ‘보암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암직’은 ‘눈에 탐스럽게 보였다’. 즉, 눈을 만족시켰다는 뜻이다. 하지만 눈의 만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는 실패를 가져왔다. 그 결과 타락과 추방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온다. 보는 것을 중요시하는 요즘 시대에 다시금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올 것’(암 8:11)이라고 한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와닿는다.